
2026년 상반기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웃긴데 짠하고, 가벼운 듯 깊은’ 감정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든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인물이 바로 자림어패럴 차녀 서지우, 그리고 그 역할을 맡아 대세로 떠오른 배우 원지 안입니다.
서지우는 흔히 드라마에서 소비되는 전형적인 재벌 캐릭터가 아닙니다. 돈은 많지만 마음은 늘 비어 있고, 화려한 외양 안에 결핍과 불안이 뿌리 깊게 자리한 인물입니다. 여기에 원지안이 더해지면서 서지우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살아 숨 쉬는 인물이 되었죠. 지금부터 ‘경도를 기다리며’ 속 서지우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원지안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완성시켰는지 풍부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서지우(원지안)는 누구인가: 화려함 뒤에 숨은 결핍과 우울
드라마 속 서지우는 자림어패럴 차녀, 38세라는 설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서지우는 ‘여배우 뺨치는 셀럽’이자 ‘재계의 트러블메이커’로 알려져 있습니다. 입만 열면 화제가 되고, 존재만으로 뉴스가 되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인물이죠.
하지만 서지우의 본질은 화려함이 아닙니다. 그녀의 내면에는 늘 스스로를 갉아먹는 결핍이 존재합니다. 서지우를 규정하는 대사는 어쩌면 이 한마디에 다 담겨 있습니다.
“그래, 나 돈 많은 거 말고, 뭐가 있니.”
돈 많은 재벌로 태어나 늘 주목을 받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높은 자존감을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낮게 바라보고, 반복적으로 자신을 ‘재수 없는 사람’이라 규정하죠.
“나는 뭘 해도 그렇게 재수가 없더라고.”
이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닙니다. 서지우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봐 준 사람은 아버지와 언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바빴고, 언니는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서지우 곁에 가장 오래 있어야 했던 사람은 엄마였지만, 엄마는 늘 지우를 차갑게 대했습니다.
서지우는 ‘언니가 뛰어난 자식이라 상대적으로 내가 미웠나 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성장했지만, 그 우울감은 성인이 된 후에도 지우를 깊게 지배합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서지우라는 인물이 단순히 ‘돈 많은 철부지’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채로 자라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강한 척하지만 실은 약합니다. 거칠고 직설적인 말투, 솔직함, 때로는 욕설까지도 ‘센 캐릭터’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자기 방어입니다.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 상처받기 전에 먼저 상대를 밀어내는 방식과 닮아있죠. 원지안은 이 복합적인 감정을 표정과 눈빛, 호흡으로 촘촘히 쌓아 올리며 서지우를 단단히 설득해 냅니다.
서지우의 사랑: “스물에 한 번, 스물여덟에 한 번” 그리고 다시 마흔을 앞두고
서지우 인생에 ‘따뜻한 시선’을 주는 사람이 또 한 명 등장합니다. 바로 이경도입니다. 스무 살의 서지우는 경도를 만나며 처음으로 완전한 행복을 느낍니다. 이전까지 세상은 차갑고 불안했지만, 경도를 만나고서야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처음 배웁니다.
그 감정은 서지우의 대사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물에 한 번, 스물여덟에 한 번, 그때 잠깐 괜찮았었지. 경도 덕분에…”
즉, 서지우의 인생에서 진심으로 괜찮았던 시기, 숨이 트이던 시기는 경도와 함께 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경도는 단순한 첫사랑이 아니라 서지우 인생에서 ‘정서적 구원’ 같은 존재로 남습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한 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지우는 철없던 스물에 경도와 헤어지고, 스물여덟에 다시 경도를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이때 서지우는 확신합니다. “이번엔 다시는 이별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인생은 서지우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두 번째 이별은 가장 잔인한 시점에 찾아옵니다. 경도의 인생에서 제일 힘든 순간, 서지우는 경도와 헤어집니다. 이 선택은 드라마가 가진 가장 씁쓸한 현실성을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결국 환경과 조건, 현실과 자존심이 관계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그리고 시간이 흐릅니다. 서지우는 마흔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다시 경도를 만나게 됩니다. 여전히 화려하지만 마음은 더 황폐해졌고, 더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더 외로운 사람이 된 서지우. 이 타이밍의 재회는 단순히 설렘이 아니라,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통증을 만들어냅니다.
이 긴 시간을 시청자가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의 ‘호흡’이 필요합니다. 원지안은 스무 살의 지우, 스물여덟의 지우, 그리고 38세 지우를 단순히 분장이나 분위기로만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말투의 온도, 감정 표현 방식, 관계를 대하는 태도, 눈빛의 농도에서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했고, 그래서 시청자는 서지우의 18년 서사를 ‘정서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원지안의 연기력: 통통 튀는 로코와 현실적인 통증을 동시에
‘경도를 기다리며’의 가장 신선한 지점은, 서지우라는 캐릭터가 통통 튀고 능글맞은 로코의 재미를 주는 동시에, 사랑의 현실적인 아픔을 깊게 끌고 간다는 점입니다. 이 균형이 흔들리면 드라마는 코미디도 멜로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 될 수 있는데, 원지안은 그 중심을 잡아내며 차별화된 로코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서지우는 우아함·고상함·내숭 같은 키워드와 거리가 멉니다. 거친 말을 서슴없이 하고, 때로는 욕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대범합니다. 이런 캐릭터는 자칫 과해 보일 수 있지만, 원지안은 그 표현을 ‘뻔뻔하게, 때로는 능글맞게’ 연기하며 오히려 신선한 재미로 바꿉니다. 시청자들이 웃게 만들고, 장면을 살리고, 캐릭터에 정을 붙이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러나 이 캐릭터의 진짜 매력은 그 안에 있습니다. 밝고 거침없어 보여도, 사실은 사랑이 서툴러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사람. 강한 척하지만 쉽게 무너지는 사람. 그 복합성을 원지안은 완급 조절로 표현합니다. 개구쟁이 같았다가도, 사랑 표현이 서툴러 상처받는 순간 순식간에 감정이 내려앉고, 그 변화가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두 사람의 경제적 차이가 갈등을 만든 장면에서 서지우가 “경도야 내가 32만 2000원 티셔츠 사줘서 미안해”라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은, 코미디 톤 속에서 갑자기 드라마의 정서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설득력을 갖는 건, 원지안이 그전까지 통통 튀는 모습을 충분히 구축해 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현실적이고, 더 아립니다.
실제로 평론가들은 원지안의 연기가 단순한 코믹 연기를 넘어 2030 세대의 혼란,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헤매는 감정까지 담아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즉, 서지우는 웃기고 귀여운 여주인공이 아니라,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자 사랑이 서툰 사람, 결핍을 안은 현대의 청춘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 것입니다.
‘서지우가 왜 원지안 이어야 했는지’ 증명한 작품
원지안은 D.P.로 데뷔한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오징어 게임 2, 북극성, 메이드 인 코리아 등 굵직한 작품에서 연달아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강렬한 비주얼과 서늘한 카리스마, 일본어까지 소화해 내는 연기력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왔죠. 그런 원지안이 이번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까지 안정적으로 소화하면서 “대세 배우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특히 ‘경도를 기다리며’는 서지우라는 캐릭터의 결핍과 외로움, 감정의 변화를 18년에 걸쳐 켜켜이 쌓아가야 하는 작품입니다. 그 긴 호흡의 중심을 원지안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갔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서지우의 인생’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종영 소감에서 원지안은 작품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드러내며 “이 드라마가 오랫동안 편안하고 따뜻하게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죠. 배우로서의 태도와 작품을 대하는 진심 역시, 앞으로의 원지안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결국 ‘경도를 기다리며’ 속 서지우는 원지 안이었기에 가능한 캐릭터였습니다. 통통 튀는 매력으로 시청자를 웃게 하면서도, 현실적인 사랑의 통증을 깊게 남기는 인물. 화려한 셀럽처럼 보여도 누구보다 결핍에 흔들리는 사람. 그 모든 감정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며 원지안은 2026 상반기 최고의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앞으로 원지안이 또 어떤 작품에서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